비개발자가 바이브 코딩으로 앱을 만들어서 수익을 냈다, 해커톤에서 이긴 사람들이 전부 비개발자였다… 하루에도 이런 종류의 뉴스가 수십 개씩 쏟아집니다. AI 관련 도구 또한 굉장한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서, 따라가지 않으면 뒤쳐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이건 개발자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개발자가 기획자 없이 기획안을 만들고, 앱 개발자가 디자이너 없이 Figma로 디자인까지 해서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있습니다. 불안은 모두에게, 동시에 공평하게 왔습니다. 각자의 영역이 침범당한다고 느끼는 사람들, 서로의 역할이 필요 없어지는 거 아니냐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AI FOMO에 시달렸습니다. 이것저것 업데이트하고 설치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주변 지인들이 개발자 도움 없이 웹 사이트나 이미지를 간단하게 만들어 쓰는 걸 보면서 불안했고요. “어떻게 해야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다 어쩌면 이 불안은 진짜 위기가 아니라, 오픈월드 게임에 갑자기 뚝 떨어진 초보 게이머의 막막함에 가깝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I로 인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영역이 너무 크게 확장되어서 당황한 겁니다. 내가 인지하고 있던 경계는 여기까지였는데 갑자기 자유도가 확 높아져버린 거예요.
그 순간 질문이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살아남지?”가 아니라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싶더라?”로요.
개발자는 시작점과 배경이 다양한 직업군입니다. 저만 해도 문헌정보학과 전공이지만 사람들한테 서비스로 도움을 주는 것이 즐거워서, 그 서비스를 직접 만들 수 있는 빌더가 되고자 서버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기술적으로 성능을 개선하거나 내부 코드를 뜯어보는 작업보다는 개발한 기능에 사용자들이 얼마나 반응하는지 지표를 보고 서비스를 개선해나가는 과정에서 큰 보람을 느꼈어요.
하지만 다른 성향의 개발자들도 같은 개발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로우 레벨의 라이브러리를 깎는 사람이 있고, 그들이 만든 도구를 잘 조합해서 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플랫폼을 구축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위에서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AI가 등장해서 개발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고 해도 자신의 성향까지 바뀌는 건 아닙니다. 결국 도구가 더 좋은 도구로 발전했을 뿐입니다.
세상의 흐름을 타서 슈퍼 앱을 뚝딱 개발하거나, 바이럴을 타는 오픈소스 도구를 만드는 것에 불안을 느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건 그 사람들의 성향에 맞는 방법이지 저한테 맞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 스스로 아는 것- 이것이 AI를 “잘 쓰는” 것의 시작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 나에게 맞는 방법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이 답을 개발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았습니다. 업무 안팎에서 반복적으로 하던 활동을 돌아보니 어떤 일에 에너지를 쓰고 있는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사내 퍼실리테이터 활동을 하며 조직문화를 설계하고, 외부에서는 독서 모임을 운영하면서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서버 개발, 퍼실리테이터, 독서 모임 운영 모두 사람들에게 좋은 경험을 만들어주는 일입니다. 코드로 만드느냐, 콘텐츠나 대화로 만드느냐의 차이일 뿐이었습니다.
이걸 깨닫고 나니 생각의 초점이 옮겨갔습니다. 이전에는 AI 도구를 잘 다루는 일 자체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서 만들어주는 쪽으로요.
목표가 바뀌니 분야 구분 없이 필요하면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AI 덕분에 지식에 접근하기 쉬워졌고 구현 비용도 줄었으니, 확보한 시간을 마음 맞는 사람들을 모아 의견을 나누고 피드백을 받아 더 나은 도구로 발전시키는 데 쓰게 되었습니다.
오픈월드를 하나씩 알아가듯, 처음엔 막막했던 다른 영역들이 점점 익숙해졌습니다. AI의 도움을 받아 다른 분야의 작업도 챙기면서 의사소통이 더 편해지기도 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프론트가 사용하는 도구의 장단점이나 문제점에 대해 잘 몰랐을 텐데, 문제를 같이 풀어나가면서 서로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기존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경계를 넘나들며 사람들에게 도움되는 것.
질문에서 출발하여 찾아낸 저의 시작점입니다.
방향성을 찾기 전의 저는 서버 개발이라는 하나의 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 섬이 가라앉으면 끝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AI의 등장은 위협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AI를 사용해서 다른 섬으로 건너가도 보고, 새로 섬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완전히 다른 영역처럼 보였지만 결국 비슷한 감각이 필요하더군요. 무엇이 문제인지 분석하거나 해결책을 찾는 일처럼, 분야는 달라도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같았습니다.
AI로 인해 불안을 느끼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우리가 믿고 있던 경계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그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AI는 그 경계를 이어주는 도구이고요. 마치 오픈월드에서 뗏목을 만들어 섬과 섬 사이를 오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한 번 건너본 사람은 압니다. 생각보다 섬은 다양하고, 넘기 직전이 가장 무섭지만 하고 나면 별것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걸요.
그래서 아직도 AI가 불안하게 느껴진다면, 바깥이 아니라 안을 먼저 들여다보면 좋겠습니다. 반복적으로 손이 가는 활동 안에 힌트가 있을지도 모릅니다.